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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새벽 1시 30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있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이불속에서 수면제 겸 해서 읽어왔고 드디어 오늘 마지막 장을 읽는 참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까지 어느 정도 불가지론에 가까운 편이었다. 왜 '어느 정도'인가 하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입장도 명확치 않았다. 이 책을 읽은 것도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호기심을 충실하게 채워주었다. 어쨌든 마지막 장을 읽고 있는 데 내용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뭐 꽤나 담담하게 읽고 있었다. 책이 전반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중점적으로든 부가적으로든 다루어 왔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은 명확했기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용문을 읽은 순간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러셀의 얘기다.

"나는 썩어서 죽으면 내 자아중에 살아남는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나는 사멸한다는 생각에 겁에질려 벌벌 떠는 것은 경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머리에 쥐가 나며 은하계와 은하단. 그리고 새까만 무한의 우주가 확대되며 한 단어가 나의 대뇌 피질을 가득채웠다.

그것은 '신'

그 동안 녹슬어 있던 공포 시스템의 작동 버튼이 실수로 눌려진 것이다. 일단 시스템은 한 번 작동되면 멈추지 않는다.(과거의 경험에서) 끝을 볼 때 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끝이란 허무함이 느껴지며 세계관이 무너지는 총체적 방황을 뜻한다. 몇 해 전에도 이 시스템이 한 번 가동된 적이 있었다. 패닉에 빠져서 C와 통화를 하고선 수동카메라를 들고 미친양 새벽에 야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무덤처럼 보이는 오브제들을 찍었다. (그 것들은 정말로 무덤처럼 보였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시스템에 저항하는 나름의 면역체계를 생각해 냈다. 그 것은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즉 죽음과 같은 영겁의 세월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었다. 고통스럽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그저 無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냐가 아니라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떨림을 누그러뜨리려 생각나는대로 글을 써재끼는 중이다. 새벽이라 무거워진 눈꺼풀을 무시해가며. 어차피 이 상태로는 잠이 오지 않을 거니까.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마도 인생 중 가장 죽음과 근접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몇 초 아니 영점 몇 초만 내가 빨랐다면 운좋게 살점과 인대가 뜯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잠들기 전에 소멸에 관한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저 지금에 집중하면 된다. 누가 완전한 無를 떠올리며 거기서 충만한 감정을 느끼겠는가? 생명체로서 죽음을 객관적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너무도 버거운 일이며 그 것은 끝없는 공포를 가져온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금서를 읽으며 하마트면 패닉에 거의 빠질 뻔했다. 나는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 책을 함부로 펼치지 못하게 막는 어떤 힘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어쨌든 신은 내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신은 공포의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일정 부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신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일 수 밖에 없다.

광신도 들의(또는 온건파) 자살 테러를 보며 '어쩌면 그들은 나보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사춘기적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리처드는 이성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성을 활용할만큼의 능력이 없다.

요즘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꽤 재미없는 생각이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오감을 활용하게 된다. 주변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대화나 그들의 눈빛 등에 집중한다.

어쩔 수 없다. 글에 허무주의 색채가 입혀지는 것은. 지금은 새벽 두시 이고 며칠째 장마가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막 '만들어진 신'을 막바지까지 읽은 참이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말이지. 그러니까 평소에 머리로 생각 할 때와 다르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그때가 바로 빨간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거든. 일단 누르고 나면 미사일은 음속의 다섯 배로 대기권을 날아가지. 그것은 사고기능이 없기 때문에 멈추게 할 수 없어. 무한회귀에 빠져. 아니 그것과는 상관이 없지. 이런식에 좀 더 가까워.

죽음을 생각해. 내가 죽는다. (어떻게든) 그럼 그 후의 세상을 떠올리는 거지. 그리고 나는 존재하지 않고 아마 원자 수준으로 다른 것들과 섞여 있지 않을까?


지금은 새벽 두 시이고 내일은 도서관에 가야 한다.

2008. 6. 23

Posted by 박하비 박하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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